개인적으로 무척이나 좋아했던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미켈레(Alessandro Michele)가 사임한다고 한다.
그의 창조적인 접근 방식은 초창기에 꽤나 혁신적이었고 성공적이었기에 그의 사임 소식 또한 충격이었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전직 액세서리 디자이너 미켈레는 2015년 1월 구찌의 2015년 가을 남성 패션쇼가 끝난 후 처음으로 인사를 한 지 이틀 후인 2015년 1월 공식적으로 최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었다. 그 쇼를 통해 구찌의 전임자인 지아니니(Frida Giannini)의 세련된 제트기류 라이프스타일 이미지를 무너뜨린 그는 완전히 새롭고 기발하며 중성적인 미학으로 구찌를 재창조하였다. 구찌의 사장 겸 CEO 인 마르코 비자리(Marco Bizzarri)는 지아니니의 후임으로 미켈레를 선택했고 오랫동안 그그의 강력한 지지자의 역할을 해왔다.
침체에 빠진 구찌를 맡은 미켈레는 새로운 브랜드로의 부활에 큰 기여를 하였으며, 마르코 비자리와 함께 2015-2019년 사이 미켈레가 맡은 구찌의 수익은 거의 4배가 증가하였다. 그렇게 구찌의 부활에 큰역할을 한 그가 사임한다는 소식에 구찌와 모회사인 케어링의 앞날은 어떻게 될지 또 앞으로 구찌는 어떻게 변신해 갈지 궁금해진다.
구찌는 케어링(Kering) 그룹 전체 매출의 과반 이상을 차지하는 중요한 브랜드이다.
미켈레의 디자인 철학은 젠더에 유동적이고 낭만적인 감성은 수많은 다른 디자이너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그로 인해 브랜드가 더 젊고 다양한 고객을 수용하고 비즈니스를 활성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그가 임명된 이후 2017년 구찌의 매출은 45%의 급성장을 하면서 정점을 찍었으나, 2018년 37% 증가, 그리고 2019년 13% 증가로 해가 갈수록 점점 둔화되기 시작했다. 최근 분기에서는 매출 증가율이 9%에 그쳐 케어링 그룹의 캐시카우 구찌가 그룹내 다른 브랜드(생 로랑 및 보테가 베네타)에 비해 계속해서 저조한 실적을 보이면서 가장 실적이 저조한 브랜드가 되었다. 또한 최근 분기에 케어링 이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구찌는 주요 중국 시장에서의 성과가 투자자들의 우려의 대상이 되면서 다른 케어링 그룹의 브랜드들 보다 뒤처지기 시작했다.
금융 분석가들은 "7년동안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엔진을 담당한 이후 변화가 필요할 수 있으며 기관 투자자들 사이에서 브랜드 재점화를 위해 새로운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전반적으로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리더의 변화라는 개념은 시장과 케어링의 주가에 긍적적으로 보일 것입니다."라고 덧붙였다.
WWD는 한 소식통을 인용하여 미켈레는 이 브랜드에 불을 붙이기 위해 "강력한 디자인 전환을 시작"하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디자이너는 요청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보고서는 케어링의 회장 겸 CEO가 브랜드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케어링 그룹은 구찌의 전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미켈레를 한정적인 부서로서 디자인 오피스를 신설해 이 부서의 디렉터로 그의 역할을 축소시키기 시작하였고, 이때부터 그의 역할은 컬렉션에만 국한되었다. 구찌의 메인 제품들은 다른 팀들이 맡게 되면서 이미 구찌의 디렉팅 시스템에 변화를 주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지난 8년 동안 구찌는 미켈레와 구찌의 CEO인 마르코 비자리의 환상적인 콤비를 통한 성공가드를 달리는듯 했으나 더 이상은 아니게 되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미켈레의 지나치게 소모적인 크리에이티브 방식이다. 미켈레는 지나치게 길고 반복적인 쇼를 한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성적 가치관이나 문화적 도용 문제도 더러 있었지만 더 큰 문제는 미켈레의 런웨이에서 점점 더 새로운 것을 느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스타일의 반복 속에 화제를 이끌어내기 위해 미켈레는 구찌와 발렌시아가와 함께 예전엔 상상하기 힘든 콜라보를 진행하거나, 혹은 최근 패션쇼에 68쌍의 쌍둥이를 초청하는 등의 이벤트를 벌이기도 했다. 이런 마케팅은 구찌에 이슈를 몰아다 주는 동시에 구찌에 대한 피로감을 증가시킨 원인이 되었으며, 이러한 노이즈 마케팅을 반복하면서 럭셔리 브랜드로서의 구찌의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 전부터 꾸준히 있었다.
Brand Finance가 발표한 2022년 글로벌 브랜드 가치 탑 50 리스트에 따르면 루이비통은 가장 가치있는 명품 브랜드가 된 반면, 구찌는 지난해 2위에서 3위로 밀려났다.
지금까지 미켈레가 구찌에 기여한 공헌도를 생각하면 지금의 평가나 대우가 다소 잔인해 보이지만, 패션에서의 8년은 너무 기나긴 시간이다. 한 스타일이나 같은 디렉팅으로 승부하긴 어렵고, 점점 소비자들은 지나치게 화려한 마케팅에 피로도를 느끼고 있다. 그래서 구찌의 디렉터가 바뀌어야 할 시점이라는 데 공감하는 이들이 많다. 다만 후임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케어링의 미래를 낙관하기도 힘들다. 특히 얼마 전 케어링의 또 하나의 스타 브랜드였던 보테가 베네타의 디렉터 다니엘 리도 갑자기 사임하였기에 그룹 자체의 전략에 대해 의문을 품는 사람들도 있다. 럭셔리 브랜드를 운영하는 기업이라면 좀 더 은밀하고 자연스러운 해고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
럭셔리가 의미하는 진짜 정통적인 방식으로 브랜드를 전개하는 클래식이 다시 필요해 보이기도 한다. 항간에는 피비필로가 차기 디렉터가 될지 모른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미켈레는 지금까지 혁신적인 구찌의 변화를 창출했지만 더 새로운 구찌의 변화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면서 사임을 언급했다. 이는 디자이너와 기업이 추구하는 근본적인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결국은 헤어지게 되는 가장 큰 이유가 되는 것이다. 창조와 이윤의 추구가 양립할 수 없는 가치인지는 구찌의 부활을 이끈 미켈레의 사임으로 또다시 럭셔리 패션계에 고민을 안겨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참조:
WW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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