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연인 중의 한 명이며 50년 넘게 작품활동을 하며 호평을 받은 화가 프랑소와즈 질로(1921-2023)가 2023년 6월 6일 향년 101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긴 세월의 작품과 높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피카소의 연인으로 더 유명한 예술가였다.
그녀가 21세, 파블로 피카소가 65세 때 만나 10년 정도 연인 관계였다.
질로는 피카소와의 관계를 통해 예술적 영감을 받았지만 자신만의 스타일과 예술적 정체성을 유지했다. 그녀의 작품은 강렬한 색상과 뚜렷한 형태를 특징으로 그녀만의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주제와 기법을 사용하였다.
질로는 작가로도 능력이 뛰어나 1964년 피카소와의 삶을 자세히 묘사한 회고록을 출간하였고 100만 부 넘게 판매되었다. 이 책의 출간을 피카소는 제지했지만 성공적이었다. 질로는 이 책의 인세로 피카소와의 슬하 아들과 딸이 합법적인 피카소의 상속인이 되는데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오랫동안 피카소의 뮤즈 중 한 명으로 그녀 또한 피카소와 함께 열정적으로 작업했으며, 피카소의 영향이 아닌 질러 그 자체로도 최근 수십 년 동안 예술가로서 재평가되었다.
2022년에 출간한 마르쿠스 뮐러의 저서 <피카소: 그의 생애의 여성들: 헌정>에서
"프랑소아즈 질로는 긴 생애 동안 끊임없이 자신을 발견하면서도 일관되게 자신에게 충실했습니다."
"1965년에 질로가 그린 딸 팔로마의 초상화가 경매에서 100만 유로의 벽을 깨는 가치를 인정받았고, 이 시대 사람들이 작품 가치보다는 가격에 더 관심이 많은 현실이라 의심할 여지없이 그녀의 평생 작품에 대한 일종의 물질적 헌사라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팔로마 아 라 기타레(Paloma à la Guitare)'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깃털 달린 모자를 쓴 젊은 여성이 의자에 다리를 꼬고 기타를 들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시원한 색감과 교차하는 추상적이고 기하학적 면으로 분할된 배경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피카소의 모더니즘 스타일을 차용하면서도 자신만의 해석을 가미한 질로의 상징적인 작품이다.
1964년 회고록에서 언급된 네 명의 피카소의 연인 중 질로가 유일하게 자신의 뜻대로 피카소를 떠난 이례적인 사람이다.
피카소는 도라 마르, 마리 테레즈 월터, 올가 코클로바와의 관계를 끝냈는데, 질로의 기억에 따르면 이들은 종종 서로를 적대시하며 갈등을 빚었다고 했다.
피카소의 여성 편력은 유명한데, 질로는 피카소가 여성을 "여신과 현관 매트"처럼 대했다고 썼다.
질로가 피카소와 함께한 시간은 다른 여성들과는 달랐는데, 칼튼 레이크와 함께 쓴 '피카소와의 삶'이라는 제목의 회고록에서 그녀는 수동적인 파트너가 되라는 피카소의 요구에 종종 반발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녀는 1953년에 피카소를 떠났고 피카소보다 50년이나 더 오래 살았다.
질로는 1921년 프랑스 뇌이 쉬르 센에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향수 공장을 운영하던 아버지의 권유로 영국의 캠브리지 대학과 소르본 대학에 입학해 법학을 전공했던 법학도 였지만화가를 위해 대학을 중퇴하였다.
질로는 1943년 파리의 한 레스토랑에서 40세 선배였던 피카소를 만났다. 당시 피카소는 마르와 사귀고 있었지만, 질로를 자신의 스튜디오로 초대했다. 그녀는 두 사람의 만남이 '재앙'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피카소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두 사람의 관계는 계속 이어져 갔다. 질로와 피카소와의 삶은 평탄하지는 않았지만 질은 피카소를 열정적인 예술가이자 때로는 두 자녀 클로드와 팔로마에게는 자상한 아버지였다고 회상한다.
그녀는 앙리 마티스의 풍부한 색채와 조르주 브라크의 분열된 기하학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했으며, 피카소의 예술 전반에 걸쳐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주제에 대해 보다 감상적이고 덜 폭력적인 시각을 표현하였다.
피카소를 떠난 질로는 1955년 화가 뤽 시몽과 결혼했지만 6년 후 이혼했다.
질로는 1961년 저널리스트 칼튼 레이크와 함께 <피카소와의 삶>을 집필하기 시작했고,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또한 피카소를 평가하는 논란의 대상도 되었다.
캘리포니아 라호야를 방문하던 질로는 바이러스학자인 조나스 솔크를 만났고, 1970년 두 사람은 연애를 시작했고 이후 두 사람은 결혼하여 1995년 솔크가 사망할 때까지 함께 지냈다.
"인류에 대한 그의 헌신과 인간성에 감탄했고, 그는 훌륭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사랑에 빠졌습니다."라고 질로는 나중에 회상하지만 그에 대해 열정적으로 느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파블로와는 달랐습니다."
질로는 남은 경력 동안 계속해서 예술 작품을 제작하고 시를 발표했으며, 70년대 말에는 뉴욕에 스튜디오를 차리고 명성을 얻기도 했다.
2019년에는 <피카소와 함께한 삶>이 재출간되었다.
알렉산드라 슈워츠는 뉴요커에서
"질로의 회고록은 눈부신 거장의 노예가 되었다가 결국 자유로워진 한 젊은 여성의 이야기로 페미니즘의 원전으로서 빛을 발합니다."
라고 썼다.
화가이자 작가였던 질로는 자신만의 개성을 포용하고 자신을 진정으로 표현하며 예술 창작의 무한한 가능성을 탐구하였다. 그녀는 예술가와 예술 애호가들이 자신의 고유한 목소리를 찾고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표현을 위한 매체로 예술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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