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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의 역사 1: 고대에서 초기 르네상스

예술

by rooun 2022. 5. 24.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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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가  빠른 글로벌 시대를 맞이하여 다수 민족의 전통과 역사에 대한 이해 없이는 공존할 수 없고 국제 간의 협력은 이제 필수적이다. 이전과는 다르게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자의든 타의든 넘쳐나는 정보들로 충분하게 파악할 수 있는 시대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서로 다른 관습과 문화를 가진 민족이나 나라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랜 접촉과 풍부한 경험을 필요로 한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우리가 해외를 방문했을 때 가장 쉽게 짧은 시간에 그 나라의 문화적 유산을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은 역시 미술관과 박물관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의 유수한 미술관이나 박물관에는 항상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유럽이나 미국의 미술관 또는 박물관에서 서양미술 작품을 보면서 느끼는 점은 주제가 주로 인간에 대한 것이다. 현대 이전의 서양화인 누드화에서부터 초상화, 역사화, 그리고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되는 신화적 주제에 이르기까지 거의 대부분이 인물들의 모습이나 활동을 주로 표현하고 있다. 산수화를 주로 다루는 동양의 회화와는 좀 대조적이다. 서양화의 풍경화는 독자적인 모습을 담아내는 동양의 산수화는 다르게 오랫동안 인물들의 배경으로만 사용되었다가 거의 17세기에 와서야 하나의 독립적인 주제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인간이 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인본주의적 사고는 고대 그리스부터 유래한 것으로 이는 서양 문화의 기초가 되었다. 고대 그리스 이전에 존재한 고대 이집트의 경우는 현세 보다는 사후 세계에 더 큰 관심을 가졌고, 고대 동아시아 지역에서도 인간과 대지를 모두 신의 소유물로 생각하여 회화와 조각에서 인간보다는 신, 왕, 제사장, 영웅들의 모습을 주로 묘사하였다. 이처럼 고대 그리스인들이 인간을 가장 중심으로 생각한 것은 서양 문화의 기원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인들은 인간과 자연이 실제로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지적 토론과 신체 단련을 통해서 발전시켜야 한다고 믿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회화나 조각 작품으로 표현한 인체는 실제 인간의 불완전한 점을 보완한 이상화된 인간이었다. 예를 들어 그리스 문화의 전성기에 활약한 유명 조각가 폴리클라이토스가 제작한 [도리포로스, 창을 멘 남자, BC 450]를 보면 운동으로 단련된 청년의 인체를 신체적으로 가장 완전한 인간으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신체의 완벽함으로 정신과 윤리의 완벽함에 반영하려고 했다.

 

 

 

폴리클라이토스, [도리포로스], BC.450-440년경, 로마시대 모각, 대리석, 나폴리 카포디몬테 국립미술관, 이탈리아

 


고대 그리스와 그 뒤를 이은 로마의 고전문화는 4C경 로마 제국의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교를 인정하면서 기독교 문화인 중세로 넘어가게 된다. 약 천년 동안 지속되었던 중세에서 미술은 교회와 밀접하게 관련되었고 영광스러운 신의 진리와 믿음을 상징하는 건축물과 조각, 회화를 창조해 내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맹이었던 당시에 미술은 종교적 교리를 전달하기 위한 도구가 되었다. 그리고 정신적 세계를 강조하던 중세에는 원죄를 짊어지고 태어난 인간은 종교적 영감이 없이는 신의 진리를 깨달을 능력이 없는 존재로 비하되었다. 특히 인체는 죄악의 근원이 된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중세미술에서는 인체를 비하하여 의도적으로 경직되고 왜곡되게 표현하였다.

맹목적인 믿음으로 중세의 인간에 대한 개념에 변화가 보이기 시작한 것은 14C 이탈리아에서부터였다. 신을 규명하려는 신학은 자연과 인간에 대한 탐구로 대치되었고, 신에 대한 관심은 점점 이 세계와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갔다. 이제 인간은 원죄로부터 벗어나 독립적일 수 있으며 인간의 지성은 모든 것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 이 사상이 바로 르네상스의 가장 중심이 되는 인본주의이다. 인간을 이 세계의 중심으로 본 르네상스의 관점은 옛 그리스 로마 문화의 관점과 일치하는데, 르네상스란 말 자체도 재생, 고대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다. 기독교는 여전히 아직도 모든 부분의 중심이었으나 기독교 문화는 인본주의적 고전문화와 융합되어 세속화 되어 갔다.

중세에는 인간의 세속적인 활동이 저평가하고 미술가를 창조적인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기술공으로 여겼기 때문에 그 당시 미술가의 생애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르네상스에 와서는 인본주의 중심으로 개인에 대한 큰 관심을 가졌고 그 결과 미술가의 생애의 기록이 활발해져서 르네상스 시대에 활약한 미술가들에 대한 여러 기록들을 남기게 되었다. 이 기록들을 토대로 또 현대의 많은 학자들의 연구를 토대로 볼 때 르네상스 미술의 시조는 1300년경의 이탈리아에서 활약한 지오토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시모네 마르티니, [수태고지], 1333,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중세회화)

 

 

지오토(지오토 디 본조네, Giotto do Bondone)는 중세 회화의 공식인 영원한 진리를 상징하는 황금색 배경과 일률적으로 전형화된 성인들의 모습에서 벗어나 이 세계를 과학적인 관찰을 통해 사실적으로 재현시키려 한 화가였다. 보통 중세의 평면적인 회화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샘이었고 이후의 화가들은 좀 더 어떻게 하면 이 세계를 사실적으로 모방할 수 있는가에 그 목적을 두게 되었다.

 

 

지오토, 애도(1305)

 

마사치오, [성전세], 1425, 프레스코, 산타마리아 델 카름;네 성당 브랑카치 예배당, 이탈리아 피렌체

 

 

 


1425경 마사치오(Masaccio)는 지오토가 제시한 방향을 한층 더 발전시켰다. 마사치오는 인간과 그 주변의 물리적 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그 당시 발명된 원근법을 그림 속에 적용하여 실제 우리가 자연을 보는 듯한 깊고 사실적인 공간을 창조하였다. 그 속에서 입체감 있고 장대하며 기품 있는 성인들을 묘사하였다. 마사치오와 동시대에 활약한 이탈리아 조각가 도나텔로(도나토 디 니콜로 디 베토 바르디, Donato di Niccolò di Betto Bardi) 는 [다윗]상을 제작하였는데 이는 중세 때에는 이단시되었던 고대 이후 첫 번째 사람의 크기와 똑같은 누드상이었다. 인체 비례나 자세, 전체적인 조화에서 그리스 조각의 영향이 뚜렷하게 보이면서도 다윗상은 실제 어린 목동과 같은 사실성이 첨가되었다. 건축가 브르넬레스키(필리포 브루넬레스키, Filippo Brunelleschi)도 고대 건축을 연구하면서 복잡하고 수직적인 고딕 성당을 단순 명료한 고전적 건축으로 변화시켰다.

 

 

 

도나텔로, [다윗], 1435, 청동, 바르젤로 미술관, 이탈리아 피렌체

 

 

아르놀포 디 캄비오 필리포 브르넬레스키, 1436, 피렌체 대성당(Duomo di Firen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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