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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과 꿈의 이미지로 표현되는 초현실주의

예술

by rooun 2022. 2. 5.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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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전시가 한창이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의 '초현실주의 거장들'과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디자인 전시관에서 초현실주의의 대표적인 작가라 할 수 있는 살바토르 달리(Salvador Dali) 전이 국내 최초 대규모 회고전으로 전시 중이다.

초현실주의는 다다가 전사이다.


다다는 1916년 세계 1차 대전 중 서구 사회의 이성과 합리 그리고 문화 전반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발전에 경도된 산업주의 등이 서구사회를 바로 전쟁을 몰아넣었다고 판단하여 기존 개념과 관념, 이념, 이성과 합리 등을 파괴하면서 등장한 반(反) 예술운동이다. 새로운 기법, 우연 중시, 퍼포먼스와 미술을 결합한 전시 등 전위적이고 전통성이 없는 형태를 구현하며 활동하였다.
당시 다다는 국제적 규모의 예술 운동으로 세계의 혼돈 속에서 부정을 통해 긍정을 추구하는 것이며, 새로운 삶을 구성하기 위해 기존 예술 형식을 파괴하는 예술의 혁명성을 전제로 하였다. 다다이스트들은 체제 순응주의와 국가 민족주의의 압력에 맞서 예술로 공격을 지속함으로 문화적 급진주의로의 대담함을 통해 기존 정치, 사회, 예술적 관습을 공격하였다. 다다가 새로운 현실을 실현하기 위해 강구한 것은 새로운 예술 형식의 추구였다. 이런 예술을 통해 다다이스트들은 관객과 세계가 새로운 삶의 양식을 창출하고 사회 전반을 전복시킬 수 있는 혁명적 힘을 구축할 것을 최종 목표로 설정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다는 새로운 양식의 구축이라는 미학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기존 예술 양식의 해체에만 집중함으로써, 예술과 사회에 전망과 비전을 제시하는 것에 한계를 지녔다. 또한 다다이스트들 자체가 지닌 독자적인 성향으로 인해 지속적인 분열로 그 세력을 상실해갔다.

이어 등장한 초현실주의는 다다가 표방한 반(反) 부르주아적 이념과 이성에 대한 분노에 기본적으로 동조한다.
그러나 초현실주의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다분히 예술 파괴적인 성향이었던 다다가 한계로 인식되면서, 다다의 대안 없는 ‘파괴를 위한 파괴’에는 반대하였고, 마침내 앙드레 브르통이 1922년 4월 『리 테라 티르 littérature』의 글을 통해 다다의 해산을 선언하고,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하여 다다를 지양하고 극복한 예술운동으로 초현실주의를 주창하였다.

창조적 혁신을 주창하는 초현실주의의 혁명적 강령을 확립하여 그 방향을 전환하였다. 실제로 브르통은 초현실주의를 물질주의적인 부르주아 세계에 반대되는, 실제 삶의 구체적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는 운동의 일환으로 기대했다. 초현실주의는 미술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비이성적인 면, 즉 무한한 상상력과 무의식을 탐구, 표현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따라서 다다는 실질적으로 미술관에 작품들을 남기지 않은 반면에 , 초현실주의 화가들은 유명한 작품들을 많이 남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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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주의가 태동하게 된 것은 1ㆍ2차 세계대전을 초래한 이유가 과학의 발전에 의해 유토피아를 낙관한 당시 현실에 대한 반동이었다. 19세기의 낙관주의는 이성과 과학에 의해 서구 사회는 자신들만의 유토피아를 구현해 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시민혁명으로 정치적 유토피아를, 산업혁명으로 경제적 유토 피아를, 과학혁명으로 기술적 유토피아를, 정신혁명으로 문화적 유토피아를 지상에 서 누릴 수 있을 것으로 낙관했다. 그러나 자신들만의 유토피아를 이루고자 하는 욕망들은 상호 충돌을 야기시키고, 그로 인해 각국의 팽창주의 정책은 전 세계를 전쟁과 파괴라는 참혹한 상황을 초래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미술계에선 이전 세계를 거부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세계의 도래를 추구하는 운동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초현실주의 회화는 그 변화 및 변동 속에서 태동되었고, 이후 상당기간 변화를 주도하였다.

또한 1924년 경, 앙드레 브레통(Andre Breton)이 [쉬리얼리즘 선언]을 발간하면서 초현실주의는 시작된 사조로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의 영향을 받아 무의식 내지는 꿈의 세계를 표현하려 했던 20세기의 문학과 미술사조이다. 브로통의 선언은 초현실주의를 의식적이고 지적인 영역에서 벗어나 순수한 형태로서의 심리학적 자동기술법(오토마티즘)이라고 규정하였다, 이는 어떠한 도덕적 규범이나 이성적 훈련에 조정받지 않는 상태로 사고를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성적으로 구상되어 표현하는 것이 아닌 즉흥적인 생각이나 행동에 중점을 두어 구현하는 방법이다.
초현실주의 미술의 일반적인 특징은 이성의 지배를 받지 않는 환상, 공상의 세계를 그림이나 사진 속에 묘사한다. 다다의 무조건 비합리적이고 파괴적인 예술행위를 지향하는 것과는 달리 초현실주의는 보다 미술적인 것에 관심을 두어 정신적인 면에서 초현실주의의 무의식에 대한 강조는 이성과 합리, 절대적인 것과는 반대되는 낭만주의와 맥과 닮았다고 할 수 있다. 프로이트의 리비도설(성욕)에서 직접 영향을 받아 억압된 무의식의 세계를 표현하려는 여러 실험을 시도하였다.
프로이트는 인간에게 이성과 정신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것으로 규정한다. 인간 의식을 이루는 것은 합리와 절제에 의해 무장된 이성뿐만 아니라 무의식도 존재함을 주장하였다.

초현실주의는 크게 추상화의 경향(미로, 마송, 에른스트)과 세밀하고 정교한 묘사의 극치를 보여주는 매우 구상적인 그림(달리, 마그리트)의 경향으로 나뉠 수 있다.

 

초현실주의 선언은 3차에 걸쳐 이루어지는데, 제1차 초현실주의 선언은 1924년 오토마티즘(자동기술법)이 중심 강령으로 채택되고, 꿈 이미지를 표현하며, 사물들의 비논리적 결합 및 병치인 ‘오브제’ 및 막스 에른스트의 ‘프로타주’, 르네 마그리트의 ‘데페이즈망’’등의 다양한 기법들이 초현실주의 회화의 주된 기법으로 자리한다.
1925년 최초의 초현실주의 전시회가 개최되고, 그 이듬해인 1926년엔 초현실주의 화랑을 파리에 개관하면서 초현실주의 운동은 절정에 도달한다. 제2차 초현실주의 선언은 1926년 마르크시즘에 기초하여 현실 비판과 현실 참여를 표방하여 실제로 혁명을 위한 초현실주의 잡지를 발간하였지만, 태생적으로 자유분방한 초현실주의 예술가들과 마르크시즘은 병존할 수 없었다. 이후 1942년에 제3차 초현실주의 선언이 발표되나, 1929년 초현실주의자들의 세계 2차 대전 참전을 위한 군입대와 망명 등으로 인해 사실상 종료되었기에 제3차 초현실주의 선언은 유야무야 된다. 이후 뉴욕으로 피난한 초현실주의자들은 잭슨 폴록을 비롯한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에 영향을 주었다. (『초현실주의 선언』, 앙드레 브르통/ 황현산 번역·주석·해석/ 미메시스, 2012)

자동기술법은 초현실주의 시인들은 시를 자동기술적인 방법으로 썼고, 자유롭게 의식을 풀어놓은 채 그리는 그림들은 비구상의 그림으로 나타나게 마련이었다. 이러한 비구상의 느낌으로 표현된 것은 추후 추상미술의 발전에 중요한 디딤돌로 인식되고 있다.

 

앙드레 마쏭은 자동기술적 드로잉을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는데, 이를 위해 자기 자신을 가장 구속적인 상황에 몰아넣기도 했다. 그는 오랫동안 굶거나 잠을 자지 않은 상태 혹은 약을 먹은 상태에서 그림을 그리곤 했다. 왜냐하면 그의 그림은 이성적 조절로부터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은 의식이 가장 축소된 상황으로 스스로를 몰아넣고, 그럼으로써 잠재적 의식에 가까이 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앙드레 마쏭, [La belle Italienne, 1943]


마쏭과 함께 자동기술적 드로잉을 발전시킨 주요 인물로는 스페인 출신의 호안 미로(Juan Miro)를 들 수 있다. 미로는 네덜란드를 여행하면서 정밀묘사를 벗어나 알아보기 힘든 기호나 문자들로 화면을 채우기 시작한다. 파울 클레(Paul Klee) 또한 간결한 기호적 풍경에 환상을 접목시킨 모습의 독특한 그림들이 대표적이다.

호안 미로, [어릿광대의 사육제, Harlequin's Carnival, 1924-1925],
파울 클레, [untitled,1940]



다른 한편, 꿈 이미지를 표현했던 대표적인 작가로는 살바도르 달리와 르네 마그리트를 들 수 있다.
스페인 출신인 달리는 1930년에 초현실주의 운동에 합류한다. 그는 자신의 화폭을 극사실적인 묘사로 채워나가는데, 현실에서는 전혀 가능하지 않은 모순적인 대상들이 조합되고 대상의 상대가 변화되어 등장함으로써 정신병적인 상태, 즉 달리는 편집광적 심리가 반영되는 독특한 초현실주의 회화를 탄생시킨다. 그는 꿈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혼돈의 상태를 관계없는 사물의 병치로 묘사하였다. 그의 치밀한 묘사력은 르네상스 거장들에게서 배운 것이었다. 후기의 그림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발견된다. 달리는 그 무엇보다 스타 의식, 즉 자신에게 세간의 주목을 끌어들이고 싶어 하는 기질이 있었다. 자신을 홍보하는 데 있어 지금의 인플루언서 못지않은 스타 의식을 가지고, 사치스러운 것과 오리엔탈 의상에 집착했다.


달리의 [기억의 영속, The Persistence of Memory, 1931] 화면에는 풍경화나 정물화 같은 구조에 광활한 자연 속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상한 유기적 형태가 놓여있고, 그 위에 몇 개의 시계가 녹아내리는 듯한 묘사를 하고 있다. 현실에서 변형이 불가한 단단한 물체에 대한 인식과 관념을 없애고 개념을 물체에 투영하여 녹아내리고 있는 시계를 표현하였다.



르네 마그리트도 치밀한 묘사로 모순되는 이미지를 표현하며 놀라운 환상의 장면을 보여준다.

[불가능한 것에 대한 시도, 1928]는 그림 속의 화가(자화상일 수도)는 전통적 미술 교육기관인 아카데미 수업의 기본 과정인 누드화를 그리고 있지만 화가는 모델을 캔버스에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누드를 직접 그려서 현실의 공간 안에 존재하는 인물로 만들어 내고 있는 듯하다. 현실을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현실의 공간을 창출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이 누드 여성은 이상적인 여인이나 이루어질 수 없는 여인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라 해석될 수도 있고, 화가의 붓 끝이 맞닿아 있는 여인의 살결은 묘한 에로티시즘 마저 자아내고 있다.

르네 마드리트, [불가능한 것에 대한 시도, 1928]


참조: 『초현실주의 선언』, 앙드레 브르통/ 황현산 번역·주석·해석/ 미메시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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